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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104.9MHz에서 온 사연
- 저* *
- 조회 : 21
- 등록일 : 2026-07-10
‘세저리 김반장’. 17.5기 김예은이 어떤 사람이냐고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 같아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처럼 김예은은 세저리 곳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있는 자리에는 긴장된 대학원 생활을 이완 시키는 웃음이 있었습니다.
입사 준비에만 몰두해도 시간이 모자랄 마지막 학기에는 심지어 세저리의 갖은 일들을 도맡는 ‘단비로운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야유회를 열고 모두가 밤을 새우는 글감옥의 침구류를 세탁하고, 단비서재를 재정비하고, 대청소의 날을 진행하고…. 이런 ‘김반장’을 지켜보는 지도교수는 애가 탔습니다. “제발 자기 일 좀 챙기라”고 버럭 화를 낸 것도 여러 번.
그러나 김예은은 옹졸하고 근시안인 지도교수의 말은 귓등으로 흘리는가 싶더니 보란 듯이 졸업 전에 옥천FM공동체라디오 PD자리를 꿰찼습니다. 김예은의 합격 일성은 “다들 제가 없이 약간 허전한(?) 대학원생활 잘 보내세요” 였습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그것은 팩트입니다. 예은 없는 세저리는 약간 쓸쓸하겠지만, 옥천 주민들은 이제 김예은 PD 덕분에 웃을 일만 남았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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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세저리 17.5기, (현)옥천FM공동체라디오 PD 김예은입니다.
지난 1일에 갓 출근한 따끈따끈한 신입PD랍니다.
여기서 잠시 옥천FM공동체라디오를 소개하겠습니다.
공동체 라디오는 공익적 목적을 위해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해 자신의 이야기나 우리 동네 이야기 등을 소재로 만드는 지역밀착형 라디오 방송입니다.
FM 주파수를 사용하는 점은 기존 라디오 방송과 같지만, 옥천 FM은 일정 지역 권역이 방송 대상입니다. 사단법인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가 옥천F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라디오의 주파수는 104.9MHz입니다.
주파수가 닿지 않는 곳에서는 유튜브를 통해 청취할 수 있습니다.
링크는 여기를 참고하시길.

종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 소식을 들어서 사실 아직도 문화관으로 향해야 할 것만 같은 감정을 느낀답니다.
아직 일을 다 배우지는 않았지만, 신입PD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간단하게 소개해드립니다.
플레이리스트 제작(특히 즐기면서 하는 일입니다)
담당 프로그램 세팅, 대본 확인, 프로그램 엔지니어링, 방송 송출용 오디오 편집, 보이는 라디오용 영상 편집 등.
프로그램 관련 사업 정산 등등.
앞으로 맡게 될 일들도 기대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는 ‘오후의 시 한 스푼’이 있는데요.
옥천지용시낭송협회 회원분들이 정지용 시인의 시와 애송시를 읽어주시는 방송입니다.
또, 김철 DJ가 사연과 함께 올드팝을 소개하는 ‘사랑 실은 멜로디’라는 방송이 있습니다.
두 방송의 엔지니어링에 참여했다가 시 낭송 시간에는 눈물을 살짝 흘릴뻔했답니다.
사연과 함께 올드팝을 들을 땐 혼자 아련해졌다가 인수인계 해주시는 내용을 놓칠뻔했습니다. 하하.
아무쪼록 취업 세저리이야기 시작합니다.

세저리와의 첫 인연은 ‘2024년 제26기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예비언론인캠프’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캠프에서 동기인 전설과 최영범 기자도 함께였습니다)
다른 교수님들의 강의도 너무 좋았지만. 특히 안수찬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저널리즘의 세계에 홀딱 반해버렸답니다.
그날 저녁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밤하늘을 봤는데요. 별이 어찌나 많던지. 왠지 이곳에 들어오면 제 인생도 이렇게 빛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답니다.
(대학원 입학 후에는 술 먹고 별을 보려고 주차장에 냅다 누웠던 건 비밀)
캠프 이후 2024년 9월, 세저리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학부 시절 철학을 전공했는데요. 대학 언론사(신문사+방송국)활동도 약 2년간 했습니다. 정오 방송으로 라디오를 송출하고, 대학 신문도 만들고,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만, 일정한 목표는 없었습니다.
갑자기 봉사 관련 대외활동도 했다가 문학동아리와 철학과 회장을 했다가, 도 사업으로 다큐멘터리와 단편 영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행복하지 않을까? 했던 거죠.
그랬던 제 인생에서 세저리에서의 시간은 가장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던 때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첫 학기에 단비뉴스 청년부 활동과 취재보도론 수업이 겹쳤을 땐 남몰래 울던 적도 참 많았습니다.
동기 전설 기자와는 세바발(세상을 바꾸는 발제_발음에 유의)을 위해서 밤을 새운 적도 많습니다.

지칠 때마다 좋아하는 가수 영상을 보면서 용기의 음료를 마시기도 했답니다.
그랬던 시간이 빛을 보기 시작한 걸까요? 전설 기자는 멋진 연탄 기사 시리즈를 완성했고 동기 중에 가장 먼저 ‘단비언론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서울시에서 운영했던 A160 버스를 다룬 르포 기사와 6호 소년보호시설 로뎀을 다룬 기사, 특수청소업체청년 엄우빈 씨를 조명한 피처 기사를 냈습니다. (물론 학기를 넘긴 후 차례대로 출고하긴 했습니다만)
A160 버스는 서울시 도봉산광역환승센터에서 오전 3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였는데요.

(지난해 2월 14일 오전 3시 4분에 버스를 기다리며 찍은 사진입니다)
환승센터 근처에 숙소를 잡은 후 오전 3시까지 기다렸다가...어슬렁 어슬렁 나와서 버스를 탔답니다. 버스는 대부분 환경·미화 일을 하시는 중·노년의 승객들이 출근을 위해 탔습니다.
탑승객 중에는 제가 제일 어렸는데, 저만 꾸벅꾸벅 졸고 다들 밝은 모습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반성했습니다.
교대 근무(?)를 하면서 함께 취재해 준 17기 박현석 선배와 동기 최영범 기자에게 늦은 감사를 전합니다.
로뎀 기사도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16.5기 정윤채, 17기 홍성민 선배와 함께 한 기사인데요.

(사진은 개인 SNS에 자랑했던 것을 갈무리했습니다. 첫 번째 사진에서 가운데 있는 사람이 대-홍성민 선배입니다.)
뉴스통신진흥회에서 큰 상을 받았습니다.
자랑 하나 더 하자면, 피처 기사를 썼던 특수청소업체 엄우빈 씨는 나중에 유퀴즈에 출연했습니다. (제작진이 제 기사를 읽었다는 후일담이..)
그렇게 뜨거웠던 첫 학기를 보냈습니다.
이후 2, 3학기는 팩트체크 부서에 들어갔습니다.
아차차. 잠시 언급할 내용이 있습니다. 저는 3학기 동안 지원팀 활동으로 ‘유쁘팀(유튜브브랜딩팀)’에 있었습니다. (나중에 라디오 PD가 될 운명이었던 걸까요?)
그곳에서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처럼 1분 안에 시사용어를 설명하는 ‘소나기’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혁신학과에서 활약하고 계신 심석태 교수님께서 유쁘팀의 지도교수님이셨습니다.

어느 날엔 노트북의 큰 화면을 세로모드로 변경해 제 영상을 피드백 해주시곤 했습니다.
교수님의 마음은 너무 감사했지만..정말 부끄러워서 이날 407호를 벌건 얼굴로 나왔답니다.
넘어가겠습니다. 어디까지 얘기했죠?
아 그리고 팩트체크부에서 1년간 활동했습니다. 당시 안쌤께서 청년부에서 절 떠나보내시면서 이런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기사 피드백을 전화로 받던 중이라 메모를 해놓았고..사진을 찍어뒀는데 이렇게 쓰일 줄이야..)

이렇게 교수님의 매우 큰 걱정이었던 제가 팩트체크부에 가게 됐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아주 중요하게 팩트체크를 해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통령 선거’ 시즌이었거든요. 저는 그곳에서 17기 김민성 선배와 한 팀이 됐습니다. 권영국 후보의 발언을 검증했습니다.
이후에도 계속 팩트체크 기사를 써오면서 참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흘러가는 발언들이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허위조작정보들을 검증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어떤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본질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했던 사람들도 너무 좋았지만, 특히 제가 너무나 존경하는 정은령 교수님이 지도교수님이셔서 더 행복했습니다. (너무나 무서워서 교수님의 그림자만 봐도 숨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제게 저널리즘의 원칙을 알려주셨고, 인공지능 시대에 어떻게 하면 좋은 언론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그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은쌤은 2년간 저를 지도해주신 지도교수님이기도 합니다. 교수님이 제게 해주신 말씀 모두가 언제나 제 마음 안에 콕콕 남아있습니다. 교수님 덕분에 말과 행동의 무게를 배웠습니다. 언제나 동경하는 마음으로 교수님을 봤습니다.

(팩트체크 소풍을 갔던 날 사진입니다. 은쌤, 홍성민 기자, 주희 PD, 김정현 기자가 있습니다)
팩트체크 부서에서 잊을 수 없는 몇몇 기사 중 하나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프로야구 단체 시청, 무료 아니다?’ 라는 기사인데요. 프로야구를 단체로 시청하려면 KBO에 저작권료를 지급해야 하냐는 인터넷 게시글을 팩트체크한 기사입니다.
기사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KBO 담당자에게 사실 확인이 꼭 필요했습니다. 며칠 동안 관계자의 연락을 기다리던 저와 18.5기 안소현 (곧 편집국장) 기자는 함께 서울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면서 로비에 상주하고 계신 경비원분께 몇 번이나 우리의 존재를 담당자에게 알려달라고 부탁드렸답니다.
전화도 계속하면서 기다리다가 몇 시간 후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답변을 얻기 위해 직접 찾아가서 기다려 보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만,

(이 앞에는 소현 기자가 다크서클이 발끝까지 내려온 상태로 머리를 헤집으면서 경비원분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소현 기자와 함께라서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 저와 팩트체크부서에서 한 팀으로 활동하면서 지지고 볶고 많이 했던 18기 정현 기자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사실 교수님들께 가장 감사합니다.
안수찬 교수님이 지도해주시는 청년부 활동과 취재보도론 수업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세저리에서는 알음알음 이런 말이 전해집니다. ‘청년부에서 뺨 맞고, 취재보도론에서 다시 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상기하기’ (뒷말은 약간의 순화를 거쳤습니다.)
취재보도론 수업을 듣고 있노라면 좋은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열정이 차올랐습니다.
(여담으로 제가 첫 학기에는 참 안쌤을 무서워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 당시에 기숙사에서 가위에 참 자주 늘렸는데요. 안쌤 사진을 뽑아서 기숙사 문에 붙여두면 귀신도 도망갈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심석태 교수님께는 언론윤리법제사례연구, 방송취재보도론을 들었는데요. 수업을 들으면서 현장에서 놓치기 쉬운 언론 윤리를 머릿속에 꽉꽉 채울 수 있었습니다.
방송취재보도론 수업을 들으면서 유쁘팀 활동을 같이 했는데, 방송 리포트에 대해 제대로 배웠습니다. 교수님 덕분에 처음 지원해 본 지역 MBC 채용에서 3차까지 올라가보는 경험도 했습니다.
마지막 학기에는 임장원 교수님이 오시면서 또 방송 수업을 수강했는데요. 스트레이트 작성 실습과 리포트 제작 실습 등에서 방송 실무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 덕분에 오디오가 많이 늘었습니다.
언젠가 라디오 진행을 하게 된다면 석쌤과 장쌤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물론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조금 부끄럽지만 저는 저널리스트를 꿈꾸면서 시사 현안과는 참 먼 사람이었습니다. 뉴스를 잘 보지 않는 사람이었죠.
세저리 학우들과 대화를 할 때면 무슨 내용인지 몰라서 아는 척하면서 조용히 웃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가 제정임 교수님 덕분에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시사현안 세미나와 경제사회쟁점토론 수업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취재니, 과제니 핑계 대면서 미뤄왔던 세상의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는 힘을 키웠습니다. 필독서를 읽고 수강생들과 토론하면서 저만의 시각을 키웠습니다. 최근 이슈가 됐던 시사 현안들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배웠습니다.
또 졸업을 앞두고 제정임 교수님이 지도해주시는 환경부에서 취재보도 활동을 했습니다. 지방선거 기획을 하면서 충북 지역의 집중호우, 산사태 현장을 방문했고 그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여러 재난이 기후위기와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유럽에서도 한창 폭염과 무더위 속 곳곳에서 산불이 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를 볼 때면 언제나 제쌤께서 기후변화의 위기를 체감하고 어떻게 언론이 보도해야 하는지 이야기해주셨던 것들이 생각납니다.
단비뉴스가 펴낸 ‘기후위기 시대 희망찾기’ 책 추천합니다. e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최근 퇴임식을 하신 박정용 교수님께도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지난해 저는 멋모르고 ‘프로그램 기획 구성론’이란 수업을 수강하게 되는데요. 영상 저널리즘을 배울 수 있는 수업이었죠.
그곳에서 제천의 한 카페, 우주산책 주인장 김기연 씨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게 됩니다.
지지부진하게 다큐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끌었는데. 박쌤 덕분에 졸업 전에 다큐멘터리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퇴근 시간을 한참 넘긴 시간에도 절 위해 피드백을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우주산책 공간을 처음 접한 날은 팩트체크 회식 날이기도 합니다. 한창 대학원 적응하며 고민이 많았던 시기에 이 공간에 들어오자 숨통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습니다.
우주산책과 김기연 씨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완성해서 천만다행입니다. 기다려주신 사장님께도 이 글을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슬슬 읽는 데 지겨우시진 않나요? 지금까지도 개인적이었으나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저와 1년 반 동안 가까웠던 사람이 있습니다. 룸메였던 18기 태린 기자인데요.
태린 기자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콘서트를 가봤답니다. (그 과정은 비밀)
무려

우하하 OASIS 콘서트입니다. 참 행복했습니다. 이 외에도 울적한 마음을 안고 기숙사에 들어갈 때면 밤늦게까지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땐 도라에몽처럼 뭐든지 꺼내서 건네줬습니다. 같이 낄낄대던 밤이 참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위치는 조금 뜬금없지만, 이 타이밍에 17기 은진 PD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싱싱미역(심신미약이라는 뜻)이 될 때면 (돈도 없을텐데) 맛있는 음식과 음료를 자주 사줬습니다.
함께 산책도 하고, 맨정신에 읽기 힘든 편지도 서로 주고받으면서 많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다큐를 제작하고 있을 때도 편집구성안이나 촬영 관련해서 조언을 많이 해줬습니다.

전원이 사진 안에 들어오진 못했지만 단비로운 위원회 멤버들에게도 참 고맙습니다. 다들 간부도 맡고 한창 바쁜 시기에(2학기 차) 참 발 벗고 나서서 열심히 봉사해줬습니다.
봉사도 하고, 행사 준비도 하면서도 좋은 기사 척척 써내는 18.5기들을 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17.5기 동기들에게도 고맙습니다. 신입생일 때 다들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함께하던 시절이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이 사진은 동의 없이 올립니다)

이제 졸업이군요. 잘하고 있는 동기들을 보면서 참 질투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다들 언제나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 보여주더군요.
질투의 마음을 가진 게 부끄러워질 때면 벌게진 얼굴로 용기의 음료를 마시곤 했습니다. 못난 제게 언제나 다정하게 대해 준 동기들 모두 고맙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말 더 많은데, 너무 긴 것 같아서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다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빠졌고, 철학을 공부하다가 저널리즘의 세계에 빠졌습니다. 기자를 꿈꾸다가 라디오 PD가 됐습니다.
헤맸다고 생각했는데 멀리서 보면 사실 비슷한 궤도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어제 참여했던 방송에서 안도현 시인의 ‘재테크’ 시가 낭송됐는데요.
거기서
나비는 머지않아 배추밭 둘레의 허공을 다 차지할 것이고
나비가 날아가는 곳까지가,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그 안쪽까지가
모두 내 소유가 되는 것
이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훨훨 어디든 날아가 보겠습니다. 방향을 잘 잡는 방법을 알려준 세저리 구성원 모두에게 정말 찐막 최종, 진짜 최종, 진짜 마지막, 완전 끝,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